[천병혁의 야구세상] 제2의 미국진출 러시…선수들은 '꽃놀이패'
1998년 3월 한국야구위원회(KBO)는 미국 메이저리그 사무국에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항의단을 파견했다. 당시 박찬호가 소속된 로스앤젤레스 다저스가 국내 아마추어 선수들에 대해 무더기로 선수신분 조회를 요청했기 때문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메이저리그 구단이 스카우트하고 싶은 선수가 있으면 KBO에 특정선수에 대한 신분 조회를 하지만 다저스는 한꺼번에 아마추어 선수 9명에 대한 신분조회를 한 것이다.발끈한 KBO는 "다저스가 9명이나 신분조회 요청한 것은 한국 유망주를 싹쓸이해 국내 구단에 되팔려는 비열한 스카우트 전략"이라고 강력하게 비난하며 메이저리그 사무국에 '한·미 프로야구 협정' 개정까지 요구했다. 한국은 물론 미국에서도 비난 여론에 직면한 다저스는 결국 신분조회를 철회했다.KBO는 그해 10월 국내 유망주를 보호하려는 방안으로 'KBO리그를 거치지 않고 해외구단과 계약한 선수가 국내에 복귀할 경우 2년간 유예 기간을 거쳐야 한다'는 규정을 만들었다.지금도 남아 있는 이 규정은 선수들의 권익을 제한한다는 지적도 있지만, 당시 메이저리그가 협정 개정에 응하지 않는 상황에서 KBO의 어쩔 수 없는 자구책이었다.KBO 집계에 따르면 1994년 박찬호부터 지난해 강정호(28·피츠버그)까지 미국에 진출한 한국 야구선수는 총 60명이다. 이들 대부분은 1990년대 말과 2000년 초반에 미국으로 건너갔다.미국 진출 선수 중 잠시나마 메이저리그 그라운드를 밟은 선수는 국내리그를 거친 이상훈, 구대성, 류현진, 임창용, 강정호를 포함해서 14명에 불과하다. 현재 메이저리그 소속 선수는 추신수(33·텍사스), 류현진(28·LA 다저스), 강정호 3명뿐이다.아직도 마이너리그에서 땀을 흘리는 선수도 있지만 나머지 상당수는 국내로 돌아왔거나 소리없이 사라졌다. 거창했던 '아메리칸 드림'이 대부분 실패로 끝나면서 2000년대 후반부터 미국 진출 바람이 잦아드는 듯했다. 그런데 지난해부터 국내 아마추어가 아닌 프로야구 선수들이 너도나도 미국 진출을 희망하고 있다. 이른바 제2의 미국 진출 러시가 일고 있는 상황이다.
원인은 두말할 것도 없이 류현진과 강정호의 성공에 다른 선수들도 고무됐기 때문이다.또한, 선수들은 미국 진출을 밑져도 본전인 '꽃놀이패' 정도로 여기고 있다.메이저리그 선수로 자리잡을 수 있다면 '대박'이고 실패하더라도 별다른 피해가 없기 때문이다.
KBO리그는 10개 구단으로 늘어나면서 선수 기근에 시달리고 있다.미국에서 실패하고 돌아오더라도 언제든지 선수들에게 거액을 쥐여줄 팀들이 줄 서 있다.여기에 한국과 미국을 드나드는 에이전트들은 선수들을 부추기고 있다.이들은 메이저리그 구단에는 해당 선수를 과대 포장해 홍보하고 선수들에게는 장밋빛 미래를 흘리고 있다. 사실 에이전트들이 미국 진출 선수들의 성공을 책임지지는 않는다.이들은 성공 여부와 관계없이 계약을 성사시켜야만 커미션을 챙길 수 있다.자신의 선수가 메이저리그에서 성공하면 더욱 좋고 만약 실패하더라도 다른 선수를 찾으면 그만이다. 이처럼 주변 환경이 조성되면서 국내 프로선수들의 미국 진출 바람은 당분간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실력 여부와 관계없이 규정에 따라 보내달라는 선수를 무작정 나무랄 수도 없다.결국, 프로야구 34년 동안 저변 확대보다는 눈앞의 성적에 급급하던 구단들만 부메랑을 맞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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